”판문점 정상회담” Circles & Squares” 임마누엘 페스프라이쉬

판문점 정상회담

나는 영광스럽게도 한국의 영어 방송 채널인 아리랑 TV로부터 판문점에서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해설자로 초대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 방송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아마도 두 지도자가 남북한 간의 적대 관계를 끝내고 향후 협력을 위한 경로와 비전을 제시했던 소위 ‘판문점 선언’을 소개하는 짧은 연설을 한 직후에 내가 말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를 인터뷰한 아리랑 뉴스의 앵커가 그 연설을 보고 감동받은 것은 분명했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한 다음 내게 영어로 질문을 하기까지는 몇 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4월27일에 양국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배려행위에서 다소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이데올로기, 선전, 경제 및 안보 관련 이유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지난 60여 년간 유지되어 왔던 분단국의 양측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상대를 어깨너머로 보지 않고 편안하게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모든 한국인들의 어깨에서 엄청난 부담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성취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그 순간에 양국간 교량이 구축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가 앞에 놓여 있더라도 정책적으로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악마화했던 암울한 냉전 시대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행동하는 하는 이들이 미국에 많지만 그들은 점점 더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 두 지도자 간의 긴밀한 교류로 인해 남한의 시민들은 거의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김정은을 미치광이 독재자나 무자비한 인권탄압자 또는 비인도적이고 기괴한 거짓과 범죄의 왕국 지도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갑자기 북한 사람들이 어떤 결점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남한 사람들처럼 보통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노인들의 집회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표현들이 사라졌다.

한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반북 사상을 주입 받았고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런 상황을 더욱 조장해왔음을 감안한다면 두 지도자가 강요된 엄격한 제한 없이 함께 이야기하는 이 순간은 정말로 획기적이었다.

공동 선언문의 내용도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여기서는 남북한 관계의 완전한 변화와 함께 모든 적대 행위의 종식을 자신 있게 선언했다. 나는 이제껏 평화를 선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그 선언문이 트럼프 행정부나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아마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트럼프 행정부에 미리 사본을 보여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공동 선언의 본문은 독창적이고 고무적이었으며 당연히 한국어로 작성되었다. 초안 작성자는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 듣고 싶어 했던 것을 예측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는데 나는 이것이 매우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언급하기를 많은 시청자들이 기대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초기 열정을 가졌었던 이번 정상 회담에 대해서 실제로는 매우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그 이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결과적으로 어떠한 도덕적이고 지적인 혼란을 느꼈다.

어쨌든 나는 아시아에서 일하는 미국인 전문가이고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내가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기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경력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난 17년간 부시, 오바마, 트럼프 정부를 거치며 지속되어 왔던 미국의 역겨운 군국주의로 인해 내 조국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이 지역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의심은 지난 60년간 전 세계에서 행해왔던 불법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확인하는 기밀 자료들이 공개됨에 따라 더욱 증폭되었다.

우리가 정상 회담을 보았을 때조차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한국에 관해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들을 계속 분단된 상태로 만든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계속 떠올랐다. 말할 필요도 없이 15년 전이었다면 나는 그러한 의문을 결코 갖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에 대해 논평을 하는 것은 객관적 분석을 제시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예일대, 도쿄대, 하버드대의 아시아학 연구 과정에 있는 엘리트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나의 지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실존적인 난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판문점 정상 회담에는 단지 미국의 무관함이 증가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보다 가시적인 것들이 있었다. 나는 토의된 주제들에 대해서는 만족했지만 누락된 주제들로 인해 매우 불안했다.

나는 마치 한국인들이 시간왜곡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정상 회담이 있었던 2000년으로 어떻게든 돌아왔으며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그때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는 2000년 당시와는 완전히 다르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 빈부 격차의 증가 또는 기후변화의 위협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서 중심에 놓여야 할 일련의 엄청난 위험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내가 들었던 내용은 신뢰 구축, 경제 교류, 정부 간 연락 사무소 개설 및 적대 행위의 종식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들은 진지했으며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루기 편한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은 잘못된 전제 하에서 진행되었다.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 모든 것이 수립되었다. 미국 또한 비핵화에 참여한다는 모든 제안은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며 진보적인 언론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이 비핵화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핵전쟁의 위험은 북한이 아닌 미국과 러시아 또는 미국과 중국 간 문제이므로 정말로 무관할 것이다.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협상 당시에 미국은 국제법을 대부분 준수했으며 다양한 무기 통제 협약에 전념했다. 미국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국제법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무기 통제에 관한 대부분의 협정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제 예방공격을 통해 러시아 미사일이나 중국 미사일을 타격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 미국 핵무기를 폐기하기 보다는 아니라 개조하고 있다. 끝으로 미국은 해외에서 수많은 불법적인 전쟁에 관여하고 다른 국가들에게 내정간섭을 해왔다. 또한 미국은 NPT 밖에서 핵무기를 유지하려는 이스라엘과 인도의 노력을 지지했다.

양국 지도자들은 동북아의 진정한 안보 위협인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미국 간에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군비 경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없다. 이러한 군비 경쟁 강화로 인해 핵전쟁을 포함한 전쟁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으며 미국에 의한 북한, 러시아 및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군사적 위협은 더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을 우선 해결하고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재앙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한은 향후 5년간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계획을 즉각 시행하고 한반도를 황폐화시킬 해수면 상승 및 증가하고 있는 사막화 문제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수조 달러 규모가 소요될 두 프로젝트 모두 미룰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대북 교류를 주도하는 것은 NGO가 아니라 북한의 광범위한 석탄 매장량에 매력을 느끼고 저비용으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다수의 석탄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기업들이다. 이 과정에서 기후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심각한 경고는 무시되고 있다.

남북한 및 전 세계에서 극소수의 부자들에 의해 부의 독점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현상은 오늘날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이번 정상 회담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문 대통령의 국내 정책에서도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지역에서 증가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은 북한이 몇 가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보다도 더 위험한 위협이 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번 판문점 정상 회담은 회담 자체 및 그 의미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균형을 잃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이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전쟁 준비를 은폐하고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볼 수도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이 트럼프에 대해 무엇이든 신뢰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남북한 접근과 그에 따른 미국의 ì—­í•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2019년 1월 6일

Circles & Squares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남북한 접근과 그에 따른 미국의 역할”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식인 한국의 언론을 통해서 북한과의 미래 약속에 관한 논의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불편한 과정이다. 이들 매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 당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진정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정치인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국제사회 진입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전혀 트럼프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 화석 연료나 프라이빗 뱅킹과 같은 파괴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극소수의 억만장자들을 대표하는 그와 그의 전시 내각은 미국 건국 이래 가장 부패한 정부를 구성했다. 그들이 사용한 통치 방식은 전체주의 정부로 극소수의 억만장자들에 의한 부의 통제를 공고히 하면서 우선은 이란과 그 다음으로는 러시아 및 중국과 대규모 전쟁 즉 세계 대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데 이는 국내 통제를 강화하고 군사 장비 및 무기 판매와 전세계 광물 자원의 전용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부의 모든 권한을 무력화하고 공공 기관의 민영화와 감세를 통해 다국적 기업이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전쟁, 부유층에 대한 감세 및 교도소와 군대 자체의 급진적 민영화를 촉진하면서 임기 2년을 보냈다.

트럼프가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없으며 그는 이러한 기후변화 시대에 인류 전체를 쓰러뜨리려고 위협하는 타락한 제국의 얼굴이다. 이 사기꾼이 평양 당국과의 대화 노력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그처럼 많은 평범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담당 기관이 너무도 부패하고 타락하여 그러한 냉소적인 결과가 전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본거지 워싱턴 DC 현지에서 실제로 그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최근 새로 전개된 사건들이 훨씬 더 불안한 패턴임을 시사한다. ‘평양 책략’은 군사 분쟁과 세계 대전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으로부터 한국과 일본 및 세계인들의 주위를 딴 데로 돌리려는 수단으로 미래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내어놓은 거대한 카니발 쇼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런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일련의 분류된 지침보다 더 나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실제 상황으로 가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석유에 의존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경제적 및 법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신재생 에너지로 나아가려는 모든 노력을 무산시키려고 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결정에 심오한 의미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것은 이들이 보통 사람들의 미래를 돌보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들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각한 정신병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문명을 종식시킴으로써 어쩌면 인류의 멸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계획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 경제 권력을 통해 그와 같은 위험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면 그들은 세계 대전과 핵전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우리가 믿을만한 모든 이유들이 있다.

우리는 현재 미국 정부가 민주주의가 아닌 사이코패스주의 다시 말해 사이코패스들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파괴적이며 재앙을 초래할 조치들을 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정부라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정상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 관계에 대한 “스펙터클 정책” 접근 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성조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교대로 나타나도록 엉성하게 설계된 회의장 배경을 보았을 때 나는 꿈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간단하게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복잡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번 정상 회담은 몇 명의 아마추어들에 의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는 진실에 직면하고 있다. 성급하고 엉성하며 엉망으로 이루어졌던 미북 정상 회담은 너무 일찍 실상이 드러났으며 그에 따른 무시무시한 결과물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며 외치고 있다.

이 회담은 액면 이하로 할인 판매한다는 중고차 세일즈맨의 속임수처럼 한량들과 식객들을 놓친 바람잡이와 포주들이 함께 모여 내놓은 정책으로 이루어진 국제관계였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북한과의 일종의 합의가 어쩌면 대규모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회담은 전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 수단인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되었다. 트럼프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나 마이크 멀린 전 합참의장과 같이 계속 투덜거리며 전쟁을 주장해온 매파들의 도움을 통해 그의 생각대로 회담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계속 암시해왔다. 이 정상 회담의 사전 준비는 큰 상금이 걸린 싸움과 유사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흥미 있고 무시무시한 일상에서 책임이 따르고 감상이 아닌 세부사항으로 그를 지루하게 만드는 실제 정책 입안보다 훨씬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우스꽝스러운 순간 동안 진행된 본 정상회담은 전혀 재미가 없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구절을 비틀어 해석해보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무능함의 연속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김정은에게 보여주었을 것으로 가정되는 동영상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급진적이고 과도한 개발 및 국민들(소비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 또는 미국과의 전면전 사이에서 국가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되어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이번 회담에서 긴장해 있는 모습이 눈에 역력했다. 김정은에게서 그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수십 년 동안 카지노를 운영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트럼프의 시간이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판돈을 두 배로 하라. 그러면 모두가 뒤를 따를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몽유병자들의 세상에서 장님은 왕이다.”

이러한 페블 비치와 리얼리티 TV를 혼합한 행사의 장소로 싱가포르가 선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싱가포르는 국가가 아니지만 아시아, 중동 및 동남아의 글로벌 자본이 이번 정상 회담이 열렸던 카펠라 호텔과 같은 고급 호텔의 초현실적 세계로 들어가는 공간이다. 싱가포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의 없고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와 같이 지역 내 문제들로부터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차단시켜왔던 곳으로 ‘사형이 있는 디즈니랜드’ 라는 농담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그런 초현실적 정상 회담을 위한 완벽한 장소이다.

이 독점적 행사는 북한을 국제 사회로 초청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김정은을 억만장자 클럽으로 불러 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이 있었지만 결핵과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본 회담의 전체적인 과정은 청중의 양심이 아니라 기본 욕구에 호소하는 식으로 매우 반지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상회담 후 열린 트럼프의 기자회견은 부풀려진 감정과 연관되는 것들로 채워졌으며 어떤 논리도 찾을 수 없었다. 계획되지 않은 정상 회담은 날림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계책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정상 회담 이후 기본적으로 동일했는데 막연하게 돌파구를 암시하고 평화 이야기를 했지만 그가 6개월 내에 전쟁 위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제도적 보장은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구속력이 있는 모든 계약 및 합의를 무시, 경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트럼프는 UN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9월 트럼프의 UN 연설에서는 이란에게 전쟁 위협을 가한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은 채 찬사를 늘어놓았다.

당시 그는 “미국은 미국인들에 의해 통치된다. 우리는 글로벌리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애국심의 교리를 수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인류 공동체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보편적 법 규정을 찾으려는 모든 노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멸을 나타내면서 법적 구속력의 반환을 제안했다.

트럼프 치하에서 미국으로 인해 야기된 위험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치적 무술을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자기 홍보를 위해 우리에게 던졌던 힘을 가져와서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능숙하게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가 시민들의 엄청난 집중과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진정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쟁 수행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용기와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Why AI does not have to be that advanced to destroy humanity

“Long, long before any robot or computer becomes smarter than a human, the interaction of humans with increasingly invasive technologies that stimulate the lowest functions of the human brain in the ruthless search for profit will reduce us to hopeless zombies who march willingly, even excitedly, towards the apocalypse. We can already see it now as governments collapse and our neighbors suffer terribly, but few, if any, can understand how others feel. The result of this influx of technology will be that the human mind will run like a poor imitation of a video and will lose control of its own fate.”

Steve Cutts’ video
“The system is failing” explains this failure the best.

https://stevecutts.wordpress.com/tag/these-systems-are-failing/

Emanuel Pastreich

January 4, 2019

“第四次工业革命中人文学科全新的重要意义” 多维新闻

多维新闻

“第四次工业革命中人文学科全新的重要意义”

20191 3

贝一明

前些日子在中国的所见所闻令我有些诧异:我见到的每个人似乎都变成了高新技术的忠实拥趸。年轻人沉迷于智能手机,打着可有可无的游戏,看着只为搏观众一笑的娱乐视频,任光怪陆离的画面在眼前变幻穿梭——他们已然在世界中迷失。

只要有机会,商店与餐厅的工作人员也会时不时地打开手机,从肤浅的内容中获得片刻欢愉。在我下榻的旅店以及附近区域,根本没有可以买到报纸的地方,更不用说书籍和关于中国当前社会、政治或经济问题的专著了。我不禁在想,到底还有多少人愿意花时间去思考应当怎样创造更加公平的社会,他们要怎样对时运不济的四邻及他人施以援手,面对环境问题我们有何对策,怎样解决财富集中、留给普通人的机会日趋减少等社会矛盾。

他们投身于高新技术的新世界,盼望迎接充斥着虚拟现实与即时通讯等更为先进的技术的时代。我猜他们之中,认为自己埋头于游戏、视频和社交媒体是在为进入全新时代做准备,因此而理直气壮的人也许不在少数。他们说不定以为智能手机及其相关技术会把中国乃至世界带入乌托邦。

然而这样的想法是否有科学基础?工艺技术终将进步,我们必须发展高端技术、必须将其限制在道德框架内——这样的想法似乎没错。但是,为了制定行之有效、意义长远的技术政策,我们首先要考虑技术对社会的重大影响,从长远角度分析新兴技术会怎样改变我们的思维方式、家庭关系、社交模式、学校与政府等机构的功能,同时秉持道德原则。

我担心的是,不仅没人对技术的作用进行客观公正的评估,就连此类评估的必要性,年轻人乃至政策制定者都对其一无所知。哪怕高新技术领域的专家都将为研发搞宣传、拉赞助(这也是一种营销行为)视为己任,却并不审视自己的研究对国家究竟有何价值、是否会对社会与道德体系造成负面影响。

我们在眺望经历技术飞速转型的社会时,视野中有个巨大的盲点。

年轻人一头扎进充斥着计算机、网络游戏、社交媒体的世界,沉迷于离不开网络的生活时,是否正在与“为步入高新技术时代做准备”这一宗旨渐行渐远?

为了在应用技术时兼顾高效与道德原则,我们是不是该摆脱线上世界、断开网络,给自己一些时间和空间,退后一步,从宏观角度考虑技术对人类社会、对我们的思维过程、对我们大脑的运作模式造成了怎样的影响?

要在道德框架内有效地利用技术,我们的最佳做法,是不是有目的、有立场地对其加以选择,从而做出理性、不受情感左右的判断,确定这种技术有何用处?要做出正确的判断,是否应该花上几天甚至几个星期的时间去沉思,去练习,去看书,去阅读哲学与诗集,去回顾古代历史,去画画,让自己沉浸在令我们成为“人”的深厚文化历史积淀中?也许为了对新兴技术善加利用,我们有必要花时间去做上述功课。

在某些人看来,这样的建议简直荒诞不经。然而,倘若我们遵循科学方法、坚持逻辑思维,就能了解上述做法的必要性所在。它似乎与被广为接受的常识和主流共识差距甚大,但历史告诉我们,主流共识常常存在谬误。

当今时代,科学技术日新月异,关于人文学科重要性的讨论此起彼伏。同时,大笔资金用于开发各种“数字人文”项目——它们可以孵化出最前沿的通讯技术,据说将使教学模式发生彻底变革,能够在世界范围内提供在线视频,哪怕观者众多,也能极具效率地展示复杂的信息内容。

我们的历史学家和社会科学家也受到资助,得以应用先进的超级计算技术来解决历史与社会难题。

他们用超级计算机分析大量文本与统计信息,把各种意外发现以图表的形式生动地展示在我们眼前。大数据揭示了曾经蒙尘的种种真相——尽管我们不禁怀疑人们用于阅读与思考的时间是否在大幅缩减。

虽然某些利用新兴技术的创新型研究仍在进行当中,鼓吹人文复兴的文章也比比皆是,但遗憾的是,我们四周从事人文教育的教师数量与相关院系所录取的学生人数正在陡然下降。

学生们并非对人文学科不感兴趣,但他们心知肚明,面对巨大的社会与经济压力,自己必须放弃追求真理、循规蹈矩,才能得到谋生的机会。因此专心读书、能够就某一问题进行复杂分析的民众日见稀少。

一言以蔽之,这是一场严重的危机。

今天,我们急需实现人文学科的真正复兴,但很可惜,在技术讨论中,“人文”只是出现在由新一代计算机芯片支持的数字显示屏和社交网络上的内容。人人都知道这些内容当然更为重要,可事实是,社会投资大多用于技术研发,而非对人类经验的探寻。

在这样的项目中根本找不到我们迫切需要的人文元素。我们需要从对高新技术的痴迷中脱身,花时间去评估各种技术对整个社会、对人们体验世界的方式所造成的复杂影响。

在这一方面,我们可以从人文学科中获益良多。然而,只有当我们认识到这个简单的事实时,以往的智者才会从蒙尘的书籍中现身,给我们以启迪:人类社会因工艺技术的发展而快速转型,从而产生了诸多不稳定因素,也令我们如堕烟海;因此在不久的将来,我们或许会经历一场劫难。

对于人类未来而言,挖掘蕴藏于哲学、文学、历史和美学之中的深刻真理要比开发新一代半导体或超级计算机更为重要——只有认识到这一点,我们才能着手化解危机。然而,尽管长夜将至,我们却没有发现明显的转机。

人文学科获得的资助相当有限(严谨分析技术对社会的影响的项目更加可怜);相比之下,与商业应用有关的科研项目却吸金甚丰(不论其是否会对社会造成积极影响)。倘若我们认真思考,便会得出这样一个令人不快的结论:我们既没有严肃对待人文学科,也没有认识到眼前危机的严重性。

只要环顾四周,各位就会发现,旨在撩拨人类基础本能的新兴产品已经令众多人沉迷于各种图像(包括游戏与色情图片)。大众被怂恿着去满足自己的好奇心与窥探欲,却不必接受智力上的挑战与道德上的约束。

观看别人狼吞虎咽、进行各种极具暗示性的表演已被视作稀松平常的事情。我们利用技术去迎合大脑最低级的功能,一种无甚内涵的消费文化便因此而生。根本没有人考虑我们的国家一百年后会变成何种模样。

我们必须在社会中开辟空间,并且对其赋予重要意义。我们应当从技术中抽身,在这样的空间里用自己的眼睛阅读书籍,用自己的双手打造艺术品或者家具,用自己的双脚漫步,从而了解我们与大地之间有多么深刻的羁绊。

在亲身体验世界、了解自己的过程中,我们可以知晓因果,能够有机会退一步思考,举一反三,将眼前的表象与整个社会联系起来。在读书、写作、绘画和观察的过程中,我们得以同真实的自我重新连结,了解地球真正的需要。

否则我们很容易被这种自杀式倾向裹挟:认为每天丢弃塑料袋不会对环境造成影响,认为电子设备的应用与我们呼吸的污浊空气毫无关联;我们会骗自己说,少年儿童构想世界的能力十分有限,其原因根本不在于他们整日整日地玩那些愚蠢的电子游戏。

第四次工业革命向我们提出了巨大的挑战,令虚实难分,使真幻难辨。随着机械复制技术的迅猛发展,人们见到电视上的丛丛绿树便以为环境状况依然良好,看几集友情剧、生活剧便认为我们的社会真的那样温暖健康。

虚拟世界是假的,我们的媒体也在被那些假象渐渐污染。报纸变成了图片卖场,展示那些出资者希望人们相信的“真相”,却不再对社会现实进行缜密调查。

在涉及到气候变化话题时,上述问题最为突出——在媒体和教育活动中,我们的这一生存危机已不再是可供讨论的严肃课题,而它却在愈演愈烈。

技术并不会告诉我们它本身会给社会带来何种影响,以及我们怎样才能减轻对它与日俱增的依赖性(它要消耗能源,从而导致气候恶化)。技术更无法帮助我们了解它的进步会怎样扭曲我们对自身、对世界的看法。

能帮助我们的,只有针对道德行为基本原则(道德哲学)、存在本质(形而上学)和知识与理解的本质(认识论)的深刻思考。

技术在迅猛进步的同时也在改变我们对世界的看法,在此紧要关头,哲学却已完全背弃我们的智识世界。正因如此,我们已变得脆弱不堪。计算机代码主导着我们的社会,也让我们的生活沦为空洞的仪式,而我们却不知该用怎样的概念去描述这一过程,也想不出搜索引擎是如何改变我们同周边世界和亲友交流的方式的。

本为人类体验重要环节的人文学科已然陨落;许多人将自己视为消费者而非社会的积极成员,一种反智文化从这种被动情绪中破壳而出、扩散蔓延。这两大因素催生出另一种危险趋势:人们无法清晰地分辨科学与技术。

在广告宣传中这种趋势尤为明显——如今广告已经取代分析研究,成为我们媒体生态圈的主要内容。针对那些博人眼球、哗众取宠的新兴技术,各种广告一味强调其神奇之处。在大多数广告中,新兴技术要么是人们用来取悦自己的玩物,要么是可以解决不便的工具,与探索真理毫无关联,不求了解,只求惊羡。

毫无疑问,此时我们身处一个由技术主导的时代,而且新兴技术(或者说新旧技术的结合体)正在不断萌发。但我们所在的并不是科学时代。科学与技术之间的界线已经因为“科技”等词汇的广泛使用而变得模糊,人们在这个问题上往往也草率了事。

科学是根据科学方法对世界展开批判性调查的实践。尽管社会中有许多研究科学的专家,但就连各大科研机构中明了“科学”之概念的人都越来越少,就更不要说普通大众了。对一次性塑料袋给环境造成的破坏视而不见,这就是社会中科学性思维日渐式微的明证。

我想起了保罗·古德曼(PaulGoodman)在“技术是否能人性化”(CanTechnologybeHumane)一文中的名句:

“不论是否利用全新的科研方法,技术都只是道德哲学的支流,而非科学的分支。”

追根究底,技术事关如何创造更加美好的世界,以及人们应当怎样遵循道德哲学原则——其中包括在某种情况下决定不去发展或者使用具有破坏性的技术。技术永远不该与持续并用推测和系统性论证来追寻真理的实践相混淆。

人文学科对真正的科学性调查与科学方法的基石至关重要。对于科学方法而言,能够针对我们感知到的现象提出多种解释的丰富想象力最为关键——这些解释随后可用于开展客观严谨的分析。

诚然,优秀的科学离不开严谨的分析,但想象力——天马行空地设想各种解释的能力——是这一过程的要素。

阿尔伯特·爱因斯坦之所以能够在理论物理领域做出突破,正是因为他用大量时间去想象宇宙可能是怎样运作的,光子是怎样的,以及哪些看似古怪的观点可以用来描述日常现象。他的研究近似于天方夜谭,但他正是因为有那么多异想天开的念头,才得以看到墨守成规的人看不到的一切。

我们对技术、商业化文化与消费主义文化的痴迷如此之深,以至于不愿推倒遮挡了我们视线的藩篱,但社会分裂、技术对环境造成负面影响等日益加深的问题终究会逼迫我们动手。

我们所熟悉的半导体和智能手机中没有那些危机的解决方案。终有一天,我们会被迫打开那尘封已久、贴有“人文学科”标签的盒子。

“한국 정치와 한국 진보는 화석이 되어버렸나?” 프레시안

프레시안

“한국 정치와 한국 진보는 화석이 되어버렸나?”

2018년 12월 20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장면은 거대한 5.1 경기장에서 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이었다. 이 열성적인 남녀 군중한테서 나오는 열정은 그 강도 면에서 놀랄만한 것이었으며, 문 대통령 자신도 이러한 반응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든 단어는 청중들의 무제한적인 환호를 통해 강조되고 부각되었다. 김일성을 인용했을 때에는 문 대통령과 군중들이 ‘하나의 몸’인 듯 보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나 아이콘(iKON)의 콘서트가 아니면, 이 정도의 열정에 찬 대중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문 대통령에게 그 순간이 매혹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북한의 음모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절을 하는 공허한 의식이 정치적 관례가 되었고, 그러한 관례는 자신이 얼마나 접근하기 쉬운 사람인가를 증명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정치인들이 전혀 만난 적이 없으며, 향후에도 결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젊은이들 및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또 다른 의식으로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직면한 상황은 달랐다. 그곳에 모인 군중들이 권력의 지배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군중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나는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헌신을 단순히 독재 정권의 표식으로 일축할 수 없다고 본다. 대규모 집회와 완벽하게 조정된 댄스 루틴 뒤의 모든 쇼맨십과 강압에는 ‘참여 심리학’을 암시하는 뚜렷한 에너지가 있다.

한국에서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2016년에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 집회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 항의 시위는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나타냈으며,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는 좁은 의미의 목표에서 보면 성공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뒤에 숨어 있는 제도적 부패, 국내 경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역으로 부상한 해외 투자은행들, 트럼프 행정부 지시에 대한 맹종과 집착,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 미국 내 네오 파시스트 운동에 관련한 완전한 침묵 등의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촛불 혁명’ 대통령으로서 갖는 문 대통령의 신화는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서 정치가 쇠퇴하게 된 것은 인간의 경험에 대한 페티시즘적 접근 방식과 지나친 상업주의에 따른 결과이다. 삶의 모든 측면은 유료로 제공되는 일종의 서비스나 움직이면서 즐기는 일종의 황홀감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문화는 한국의 출생률이 절대적 최저점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에 자리 잡았으며, 최근 예멘 출신 난민에 대한 항의에서 표출되듯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 결합되었다.

더욱 노쇠해진 사회는 고령자가 정치 과정 대부분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치 경제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70세 이상 남성들이다. 이 문제는 부(副)의 집중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극히 일부만이 참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대신 게임과 포르노, 기타 현실 도피적 행위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가 붕괴되었다.

진보주의 운동은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2000년대 초 노무현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열정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특히 진보적인 정치적 논쟁이 좁은 범위의 상징적 문제들로 한정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이 성적으로 학대한 ‘위안부’에 대한 논의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오늘날 한국 남성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외국인 여성 학대에 대해 관심 갖는 이는 거의 없다. 또한 자유무역이 농업 및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금기 주제가 되었다.

노년에 접어든 진보 정치 지도자 중 다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라는 향수에 빠진 채 현재 한국의 노동 계급 젊은이들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미국 민주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보다는 좌파로부터의 비판에 더욱 관심이 있다. 결국 그러한 나이 든 지도자들 중 다수는 상당히 부유해졌으며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자녀나 손자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는 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영향력이 큰 진보 정치 활동가들이 주최한 책 사인회에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올해 53세인 내가 참석자 중 최연소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멸종한 파충류 알로사우루스와 디메트로돈처럼 화석화된 이들은 그곳에 모여서 자신들이 70년대와 80년대에 만났던 학생들의 투쟁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장황하게 늘어놓은 다음 그 시대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몇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 비난했지만, 일반 청년들이 직면한 악몽과 같은 세계에 직면한 일반 청년들이 저하된 현대 교육 하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쇠퇴하고 있는 경제 체제의 최전선에서 탐욕스러운 학원들과 그들을 고용해야 하는 기업들의 거만한 무관심 사이에 끼어있는 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그 행사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이 든 진보주의자들이 청년들을 행사에 초대했다면, 행사 참석으로 인해 많은 이익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달 진보적인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곳에 진열된 한국어로 쓰인 교육, 경제, 사회 및 문화에 관한 책들은 훌륭했다. 서점 주인은 현대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사려 깊은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이 든 지식인들이 만든 지적 공간과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세계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전역의 카페와 편의점에서 일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 서점에 있는 책의 내용을 통해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독서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겠지만 그러한 글들에서 찾을 수 있는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정직한 평가는 많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젊은이들이 그러한 진보적인 서점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며 서점이 세워진 것을 매우 낯설게 여길 것이라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대중가요의 가사에서 자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의도에서 그러한 서점을 운영하는 고등 교육을 받고 부유한 사람들은 무자비한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한국에서 살았던 11년 동안 4개의 진보적 비정부기구(NGO)에 참여했지만, 모든 곳에서 참여 문화가 사라진 것을 느껴 그만두었다. 그 NGO들은 내가 월 회비를 지급할 것을 기대했으며, 나는 연례 모임에 초대받았지만, 그 외의 다른 행사에는 참석할 기회가 없었으며,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도움을 제공할 방법이 없었다.

회원 자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오히려 연례 모임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부유한 기부자들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해 이런 진보적 기부자들은 마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북극곰을 구하기 위한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진보적 활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린피스는 북극곰에게 의견을 말하거나 회원이 되도록 요청하지 않으며 진보적 단체들은 노동 계급 사람들에게 가입을 요청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던 NGO는 참여연대로, 대전과 서울에서 회원으로 참여했었다. 당시 나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관심사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사무실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이벤트를 게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제안은 거절당했다.

4개월 전, 참여연대 측으로부터 회원 탈퇴 이유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또한 내가 행정 담당자들과 만나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그들의 답변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그러한 정치의 화석화 과정은 보수 진영이 더욱 심각하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의 보수적인 항의 시위가 정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이들은 한국, 미국, 이스라엘 깃발을 손에 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을 위해 보수 정치인들 간에 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장기를 들고 있는 이들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집회들에서는 주로 반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독교계의 지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방 정책,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의 발전 모델에 대한 찬양 등이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시위 참석자 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부착된 배지를 착용한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의 국제 무역 의존도를 높이고 농업을 경시하며 화석 연료를 대규모로 수입하기로 한 박 전 대통령의 결정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경제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추진력과 공교육에 대한 공약이 여전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이 노인들이 한때 좌익 남로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경제적 자립을 주요 목표로 삼았던 박 전 대통령을 현재의 보수 정당들과 연관 짓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었다면, 현재 보수 진영에서 추진하고 있는 수입 식품 및 기타 중요한 물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외국의 투자 은행들이 한국 경제에 직접 간섭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황당한 경제 정책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맥쿼리 그룹과 같이 포식성을 갖고 있는 해외 금융 기관에게 자국의 인프라를 기꺼이 팔아넘기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었으면 민관합작투자 인프라 법(PPI Act)을 수용하거나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영세 자영업자들이 망하도록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한국의 전통을 파괴하고 카지노 홍보나 성형수술의 장려 또는 광고에서 성적 대상으로 여성의 역할을 국한시키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 정치에서 노인 집단의 가장 중요한 주요 자산은 한미 동맹이다. 한미 관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선교사들 및 평화봉사단 자원 봉사자들과 한국 전쟁 이전 시대에 민주적 과정을 붕괴시킨 무자비한 군부 인사들이 어우러진 매우 복잡한 관계였다.

노인 시위대는 실제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양국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정하고 실질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은 급격한 발전보다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과거를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 가장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과거 한국인들이 우수한 문화 및 경제력을 갖추었던 명나라를 형님으로 섬기며 예를 갖추었던 사대주의 방식이다. 결국 명나라는 1592년과 1598년 사이에 조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구원병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련의 캠페인을 통해 깊은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에게 있어 명나라는 정치적·문화적 권위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가속화되고 있던 명나라의 정치, 도덕 및 제도적 쇠퇴는 17세기 초반 절정에 이르렀다. 명나라 정치 문화의 문화적 특징이 한국에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명나라 자체는 국내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갈가리 찢어졌고 결국 1644년 정치 단위로서는 완전히 파편화되어 붕괴되었다.

당시 한국 지식인의 대다수는 그 후 300여 년 동안 명나라의 문화적 권위에 충실했으며, 만주족이 청 왕조를 설립함으로써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천명이 위태롭게 된 이후에도 한국에 있는 기관을 유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명 말기에도 쇠퇴하고 있는 징후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명나라의 권위는 멸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한국에는 현재까지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1627~1644)의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유교 서원들이 있다.

현재 보수주의 운동가들의 태도는 이와 상당히 유사해 보였는데 나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그만둔 이후에도 미국에 대한 그러한 충성심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 여부가 궁금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졌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가 현실에 직면할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의 지도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말하는 미국 대통령에 맞서 과거에 대한 그들 자신의 신화로 후퇴하고 있다.

노인들에 의한 진보와 보수 담론의 지배 및 좁은 범위로 한정된 주제의 제한으로 인해 한국은 북한의 개방을 잘 활용할 능력이 마비되었다. 북한과 함께할 많은 프로젝트를 제안 및 실행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많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방관자로 남아있으며 갈수록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가장 큰 난제는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남한 사람들의 능력이다.